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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코로나 카스트 제도

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처럼 보였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렇게 계층과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인류를 공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봉쇄령 같은 극약처방이 잇따르면서 코로나19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바이러스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환상이거나 착각일뿐이었다.

 


 

2020325,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내려진 인도 정부의 전국 봉쇄령은 이들을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만들었다. 일하던 곳이 폐쇄됐고 임금을 주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도시에서 굶어 죽느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도시 탈출에 나섰다. 집세와 생필품 가격이 비싼 도시에서 3주 이상 지내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모든 도로와 철도, 항공편이 막히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어 고향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했다. 마치 피난길 같은 도로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이들에게 진정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보다 앞으로 견뎌야 할 굶주림과 가난이다.

 

가난한 나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도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 등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도 저소득층은 빈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마트·식료품점 점원이나 배달원처럼 봉쇄사회의 일상을 돌아가게 해주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출근해야 한다. 실직, 무급휴직에 처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화이트칼라노동자 중에서도 초고소득층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을 떠나 교외 별장이나 외딴 섬으로 피신한다. 수영장과 체육관 등이 딸린 호화 벙커를 짓는 일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8만 달러, 한화로 9,760만 원짜리 민간보험으로 코로나19 검사와 치료를 해결한다. 결론은 부자들의 일상은 코로나19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처럼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빈부격차의 단층이 극명하게 드러나자 코로나 카스트제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경제력 격차는 의료 접근권의 차이, 종국에는 생명권 격차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콜센터나 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비롯해 임시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직군이나 영세 사업장 등 약한 고리부터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에 의한 경제 충격은 이제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은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덮친 것도 계획에 없던 일들 중 하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자원의 양은 제한적이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적 자원을 소모하면, 다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심리적 자원은 부족해진다. 코로나 카스트 속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심리적 자원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사람들이 피로해진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밥벌이의 고단함 앞에 정부가 외치는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의 실천이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이다.

 

.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본 칼럼은 <브릿지경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