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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인재경영] 재택근무의 성공 요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앞다퉈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바이러스를 피해 비대면·비접촉 생활인 이른바 언택트가 일반화되면서 재택근무는 선택의 여지없이 수용해야 하는 강제사항이 되버렸다.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쇼피파이, 스퀘어 등은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재택근무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20205월 주간 화상회의에서 코로나19로 촉발된 재택근무를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도입 및 확대하는 이유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인 IBM은 재택근무의 원조 격이다. 1993년 사무실 외 공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했고, 전체 직원 38만 명 가운데 40% 정도가 재택근무로 일했다. 그 결과 IBM은 미국 내 사무실 임대 비용만 연간 1억 달러, 한화로 약 1,140억 원을 절약했다. 미국 의료보험 기업인 애트나(Aetna)는 총고용 인원 48000명 가운데 43%가 원격근무를 하는 덕분에 사무실 임대 비용을 15~25% 절감했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 사이 재택근무 비율 증가율이 115%에 달한다. 일본의 도요타는 2016년부터 1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대상은 사무직과 연구·개발 담당 기술직 등 25,000명으로, 전체 직원 72000명 중 3분의 1에 해당한다. 밀라노대 마르타 앙젤리치 교수는 2020년 이탈리아 대기업 31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1회 재택근무를 통해 생산성이 4.5% 증가했으며, 직원만족도가 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필수를 넘어 강제사항이 되버린 재택근무, 제대로 알고 실천해보자.

 

그런데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글로벌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갑자기 확대하려는 중요한 이유는 뭘까?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때문이다. 때문에 JP모건은 20204월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자 핵심 업무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뉴욕과 런던에 트레이더 및 영업 지원 중 절반을 외곽 지역에 마련된 근무 공간으로 분산 배치했다. 이것을 ‘BCM(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 비즈니스 연속성 관리라고 하는데 비즈니스가 중단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즉 특정 도시의 공장이 폐쇄되더라도 다른 지역 공장에서 생산성이 이어지도록 하는 전략을 말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금융기업뿐만 아니라 IT기업들도 위기 시 본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업무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는 BCM전략으로서 장소의 유연근무제를 실행하고 있다.

 

장소의 유연근무제는 본사의 위치에 제한받지 않고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본사는 제주도에 있지만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인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거다. 재택근무 우선주의를 채택하겠다고 선언한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재택근무야말로 전 세계 능력있는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대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인재들도 채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재택근무를 통한 인재 영입 확장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우리나라에서 재택근무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은 2017년부터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적극 지원했지만 국내 기업 도입률은 8.5%에 거쳤다. 평균 활용실적은 원격근무제 1.5, 재택근무제 1.3명으로 기업에서 제도를 도입했어도 실제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 SK, LG를 비롯한 대기업은 물론, 재택근무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던 콜센터나 금융권, 제조업에서도 재택근무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코로나19가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 현재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는 업무 상당수를 직원 자율화에 맡겨졌다. 그러다보니 업무 효율성의 한계가 금방 드러났고 보안 관련 안전성, 협업과 관련된 업무 연결성 부분에서도 매우 취약했다. 그러나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기술을 통해 그 취약점을 대폭 보완하고 시스템화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의 핵심은 무엇인가?

영국에서 재택근무의 핵심은 무엇인가라고 조사를 한 결과 신뢰가 압도적이었다. 혹시 당신은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제때 일을 하는지?’, ‘대충하면 어쩌지?’하는 염려를 해본적이 있는가? 루소는 신뢰를 타인의 의도나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에 근거해서 취약성을 감수하려는 의도로 구성된 심리적 상태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취약성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 속에 신뢰는 위험을 전제한다. 정말 당신과 직원이 신뢰관계에 있다면 위험이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직원을 감시, 감독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에는 3가지 발전 단계가 있다. 가장 낮은 단계가 계산적인 신뢰. 당장의 손실과 이익을 따져 신뢰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과 이런 정도의 신뢰수준이라면 주고 받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전에 과제를 주고 오후에 결과를 체크하며 달성 정도에 따라 보상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지식에 근거한 신뢰. 직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단계다. 해당 직원이 여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예측이 되면 그만큼 놔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일시에 근거한 신뢰. 이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깊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보이는 단계다. 이는 루소가 정의한 신뢰의 단계로 진정한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방향만 설정해주면 목표설정과 성과를 알아서 잘할 거라고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시에 근거한 신뢰단계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공동의 목표를 진정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함께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공유하고, 직원의 역할이 조직에 기여하는 정도를 상기시킨다. 아울러 우리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둘째, 약속을 준수하고 적절한 권한 위임을 통해 서로 합의한 사항을 존중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재택근무는 자율에 맡기고 결과를 명확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지켜야 할 행동원칙을 상호간에 정하고 이를 예외없이 실천해가야 한다.

 

 


재택근무의 성공요건 두 번째는 소통이다.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1976년 문화간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고맥락(high context)-저맥락 사회(low context culture)’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맥락에 따라 사람 사이에 사회적 유대감, 책임감, 헌신, 대립, 소통이 어떻게 다르게 맺어지는지 연구했다. 고맥락 사회에서 정보는 깊은 의미를 담은 단순한 메시지로 넓게 퍼진다. 예를 들어 당신의 자녀가 반장선거에 나간다.”고 하면 출마에 따른 자녀의 역할과 여러 가지 학부모의 책임과 기여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반면 저맥락 사회는 서로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명문화되지 않은 암묵적 룰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 사회다. 고맥락은 메시지에 담긴 정보보다 맥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팀장이 이건 중요해라고 말하는 표현이 진짜인지 엄포용인지 알 수가 없다. 상사가 일을 시킬 때 일의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눈빛과 말투, 표정 등을 통해 중요도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데 재택근무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재택근무시 업무목표와 원하는 아웃풋, 배경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직원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것을 보고 재택근무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단지 사무실에서 하느냐, 카페나 집에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익숙함과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다.

 

.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본 칼럼은 <월간 인재경영>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