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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성과지표(KPI)의 과도한 맹신

영국의 컨설팅 전문기업인 딜로이트에 의하면 95퍼센트에 해당되는 기업이 성과관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단 6퍼센트만이 현 성과관리 제도가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조직의 비전달성과 구성원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KPI 중심의 성과관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 기준을 찾으려 한다. KPI 중심의 숫자는 객관성의 요소가 짙은 데가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양적 지표는 근거가 명확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에게는 안전책이라 생각한다.

 

또한 양적 지표는 투명성과 객관성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 보면 즉시 이해가 되고 증감의 흐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 책임성을 나타내는 양적 지표의 추구는 조직 내외 신뢰도가 낮은 문화일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조직 내외의 낮은 신뢰도는 KPI를 신격화시켜 KPI 활용도를 높이게 만든다. 결국, KPI에 대한 신뢰가 판단에 대한 의존 감소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은 사회적 의사결정에 더 많이 활용되는 정량적 지표일수록 부패 압력에 더 많이 시달리고, 이 지표로 감시하려는 사회적 절차 또한 쉽게 왜곡되고 부패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해석해보면 통제에 사용되는 모든 측정수단은 꼼수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별로 효과가 없다는 다양한 증거에도 그 효력에 대한 믿음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KPI의 강박은 숭배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KPI는 미덕과 과시의 역할을 한다. 실질적인 일의 진척도대신, ‘측정의 진척도가 성공의 모조품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정부는 대학 진학률졸업률을 높이기 위한 KPI를 설정한다. 하지만 이 지표에는 함정이 있다. 대학 졸업자들이 학사 학위가 없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대학 졸업자가 많을수록 생산성인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소수만이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에서는 학사 학위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내포한다. 하지만 학사 졸업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학위가 경쟁력의 도구로서 갖는 가치는 떨어진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장이면 충분히 할 일에 대학 졸업자의 스펙이 요구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결과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의 임금은 낮아지고 많은 대학 졸업생이 대학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배치된다. 결국 승리자가 많을수록 승리의 가치는 낮아지게 된다.

 

오늘날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판단과 해석에 의해 좌우되므로 표준화된 KPI로 해결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측정지표가 아니라 판단의 수단으로서 과연 ‘KPI가 가치 있는가이다.

 

.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본 칼럼은 <브릿지경제>에 게재되었습니다.